압록강 단교? |
발표 날짜:2022-08-22 독해 량:12289 |
중국 단둥과 북한 신의주 사이 압록강에 가로놓인 두 개의 큰 철교는 강물의 상류와 하류로 나뉜다. 중조우의교 또는 단교로 알려져 있다.
하교는 1909년 (청선통 원년)5월 당시 조선총독부 철도국이 안봉선 (단둥~선양)의 임시 협궤 군용철도를 영구적 상업철도로 바꾸면서 압록강 위에 건설한 첫 철도교다.전체 공사 사역 중조 두 나라 노동자 51 만명, 1911년 (선 통 3년) 10월 완공 된 다리 길이 941.83, 너비 11 미터, 12 공 곡 태엽 식에 거금을 주시 오, 그중 9번 교각을 축으로 홰 돌풍 식 거금을 매일 정시 개방 하도 록하는 대형 선박이 통과 할 때 사용 할 수 있 으며이 다리 건설 되면 실 안 봉과 북한 철도 연결,이리하여 중국 동북과 조선반도를 관통하는 운수선이 형성되였다.1943년에 다리가 건설된후이 다리는 도로다리로 바뀌었는데 다리 중간은 큰 차도이고 량쪽은 인도이다.왼쪽은 북한으로 가는 통로, 오른쪽은 중국으로 들어오는 통로다.
우에다리는 1937년 (민국 26년) 4월, 일본 침략자들이 안봉 복선 철도를 부설할 때, 당시 일본자동차주식회사와 일본건설주식회사가 연합하여 아래다리의 상류 100 미터 지점에서 300년 주파수로 설계하여 건설한 것으로, 1943년 4월에 개통하였다.다리는 길이가 946m 이고 12개의 구멍이 있다.조선측의 6개 교량은 평현련속교량이고 중국측의 6개 교량은 현수련속교량식 복선철도교량으로서 상하행 한쌍의 렬차가 동시에 운행할수 있다.다리가 개통된 후, 일본 침략자들이 중국의 자원을 마구 략탈하는 주요 통로가 되었다.항일전쟁이 승리한 후, 대교는 당시의 쏘련 붉은군대가 접수하여 관리하였다.1947년 6월, 쏘련군대는 조선에서 철수할 때 강교를 중조 두 나라 정부에 각각 넘겨 공동으로 관리하게 하였다.1951년 1월, 위다오는 복선 철도 하나를 철거하여 도로로 바꾸어, 철도와 도로 양용 다리가 되었다.
항미원조전쟁이 시작된후 압록강대교는 기타 다리들과 함께 군수물자의 공급과 후방에서 전선을 지원하는 수송임무를 공동으로 담당하였다.첫 번째 지원군의 대부분이 이곳으로부터 전선으로 달려갔다.전쟁 중에도 압록강 다리를 통해 수많은 작전 물자와 무기들이 북한에 전달됐다.미군은 우리 지원군의 병력과 물자 지원을 차단하기 위해 1950년 10월 대부분의 공군력을 집결시켜 압록강에서 중국과 북한을 잇는 중요한 교통요로인 철도, 도로 교량을 설치하기 시작했다.만주 국경의 북한 끝자락에 있는 모든 국제교량을 최대의 힘으로 무너뜨리고 압록강 동쪽의 모든 교통수단, 군사시설, 공장, 도시, 마을들을 무참히 무너뜨리겠다는 것이다.11월 8일부터 21일까지 600여 기의 폭격기를 동원해 압록강의 모든 교량과 북한 북부의 마을 · 군사시설 · 교통로를 융단폭격했다.북한 북부는 순식간에 폐허가 됐고 압록강 연안은 불바다가 됐다.압록강 다리도 허리가 폭파돼 북한측 다리 8개가 모두 강 속에 가라앉으면서 다리가 완전히 마비됐다.다리의 북한측 레루가 폭파되면서 다리의 위치가 이동하고 다리바닥에서 불이 났다.안동철도국에서는 200여명을 조직하여 다리에 뛰어올라 모래와 자갈을 가득 넣은 모래주머니로 림시교각을 축조하고 침목다리더미를 만들어 파손된 밑들보를 받쳐 다리를 복구하였다.전쟁의 세례속에서 비록 몸우에 무수한 총탄구멍이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압록강우에 우뚝 서있는"격파해도 파괴해도 폭파해도 붕괴되지 않는"강철운수선은 중조 량국 인민의 손으로 침략자들을 물리치고 나라를 보위하는 승리의 금자탑이며 중조 량국 인민의 우의를 받쳐주는 무지개가 되였다.
항미원조가 승리한후 조선측은 하교가 속한 6 쿵철교의 잔해를 철거하였다.중국측이 속한 잔교는 탄흔으로 가득찬 채 온전하게 보존되여있었다.이 대교의 중국측 한쪽이 온전히 보존된것은 결코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 심원한 력사적배경이 있기때문이다.한국전쟁 때 북침미군 총사령관 맥아더는 미국의 유명한'승승장구'였다. 그는 전쟁 초기 일시적인 승리에 도취돼 중국과 조선은 안중에 두지 않고'추수 감사절'전에 전선을 압록강까지 밀어붙이려 안절부절 못했다.미국정부는 중국정부의 거듭되는 항의와 엄중 경고에 주목하여 중국공습을 계속하면 중국을 전쟁에 끌어들일수 있다고 우려하였다.때문에 미국공군은 압록강대교를 폭격할 때 부득불 엄격하게 중조 계선을 파악하고 조선쪽만 폭격하고 중국쪽은 폭격하지 못하였다.압록강'끊어진 다리'의 존재는 신중국의 국제적 위상을 생생하게 보여 준다.
1988년 10월 17일, 단동시인민정부는 끊어진 다리를 시급문화재보호단위로 정하였으며1990년 10월 25일 양국 정부는 두 국민의 생명과 피로 맺어진 전우의를 기리기 위해 상단의 다리를'중조우의교'(북한 측 한쪽 끝을'조중우의교'라고 이름 붙였다.2000년 10월, 지원군의 항미원조작전 50주년을 기념하여, 중앙정치국 위원, 부주석, 장-하교를 위해"압록강 단교"라는 제사를 썼다.2001년 중국 탄생 80주년을 앞두고 중앙선전부는 압록강 단교를'전국 애국주의 교육기지'로 명명했다.2006년 6월에이 다리는 국가급문화재중점보호단위로 지정되였다. |
中朝友谊桥位于中国丹东与朝鲜新义州之间的鸭绿江上,横卧着的两座大铁桥,以居于江水的上下游分为上桥和下桥,这就是人所共知的中朝友谊桥和断桥。 下桥是1909年(清宣统元年)5月由当时日本驻朝鲜总督府铁道局在将安奉线(丹东—沈阳)临时轻便窄轨军用铁路改成永久性商业铁路的同时,在鸭绿江上所建的第一座铁路桥。整个工程使役中朝两国劳工51万人次,于1911年(宣统三年)10月建成,桥长941.83米,宽11米,12孔,曲弦式下构钢梁,其中以9号桥墩为轴上架旋式钢梁,每日定时开放,供过往大型船只通过时使用,该桥建成后,安奉线同朝鲜铁路接轨,形成了贯穿中国东北与朝鲜半岛的一条运输线。1943年上桥建成后该桥改为公路桥,桥中间是大车道,两边是人行道。左侧为去朝鲜的通道,右侧是来中国的通道。 上桥是1937年(民国二十六年)4月日本侵略者修建安奉复线铁路时,由当时的日本汽车株式会社和日本建设株式会社联合在下桥的上游100米处按300年频率设计修建的,于1943年4月通车。桥长946米,共12孔。朝方6孔是平弦连续桥梁,中方6孔为吊弦连续桥梁式复线铁路桥,可同时行驶上下行一对列车。大桥通车后,成为日本侵略者大肆掠夺中国资源的主要通道。抗战胜利后,大桥由当时的苏联红军接管。1947年6月,苏军撤离朝鲜时,将江桥分别移交给中朝两国政府共同管理。1951年1月上桥把复线铁路拆去一股改成公路,变成铁路、公路两用桥。 抗美援朝战争开始后,鸭绿江大桥和其它桥一起共同承担起军需物资供应和后方支持前线的运输任务。首批志愿军大部分都是从这里奔赴前线。战争期间,大批作战物资、武器装备也都是通过鸭绿江大桥运至朝鲜。美军为切断我志愿军的兵力和物资后援,1950年10月调集大部分空中力量,开始对鸭绿江上沟通中朝两国重要交通要道的铁路、公路桥梁实施-。声称要“以最大的力量”“摧毁在满洲边界上的朝鲜一端的全部国际桥梁”和鸭绿江以东地区“所有交通工具、军事设施、工厂、城市和村庄”。11月8日至21日,美军出动轰炸机600余架次,对鸭绿江上所有桥梁以及朝鲜北部的村庄、军事设施和交通要道进行了地毯式轰炸。朝鲜北部顷刻间化为废墟,鸭绿江沿岸一片火海。鸭绿江下桥也被拦腰炸断,朝方一侧的8孔桥梁全部沉入江中,下桥彻底瘫痪。上桥朝方一侧铁轨被炸,桥梁移位,桥面起火。安东铁路局组织200余人冲上江桥用装满沙石的沙袋修筑临时桥墩,上面搭建枕木桥垛,顶住受损底梁,使大桥得以修复。在战争的洗礼中,尽管它的躯体上留下了无数道弹孔,却依然屹立于鸭绿江上,被誉为“摧不毁、炸不烂”的钢铁运输线,成为中朝两国人-手抗击侵略者、保家卫国的胜利丰碑和架起中朝两国人民友谊的一道彩虹。 抗美援朝胜利后,朝方将下桥所属的6孔铁桥残骸拆除。而中方所属的残桥,带着累累弹痕,完整地保存下来。这座大桥中国的一侧能完好保留下来,绝不是偶然的巧合,而是有着深远的历史背景。朝鲜战争时,侵朝美军总司令麦克阿瑟是美国有名的“常胜将军”,他在战争初期,被一时的胜利冲昏了头脑,不把中国和朝鲜放在眼里,狂妄地要在“感恩节”前把战线推到鸭绿江边。而美国政府注意到中国政府的一再抗议和严重警告,担心如果继续空袭中国将会迫使中国卷入这场战争。因此,美国空军在轰炸鸭绿江大桥时,不得不严格地把握中朝界线,只轰炸朝鲜一侧,而不敢轰炸中国一侧。鸭绿江“断桥”的存在,生动地展示了新中国在国际上举足轻重的地位。 1988年10月17日,丹东市人民政府将断桥列为市级文物保护单位;1990年10月25日,中朝两国政府协议决定将上桥命名为“中朝友谊桥”(朝方一端为“朝中友谊桥”),以此来纪念中朝两国人民用生命和鲜血凝成的战斗友谊;2000年10月,在纪念志愿军抗美援朝作战50周年时,0中央政治局委员、-副主席、-长-为下桥题词“鸭绿江断桥”;2001年中国0诞辰80周年前夕,中宣部命名鸭绿江断桥为“全国爱国主义教育基地”。2006年6月,该桥被列为国家级文物重点保护单位。 |